2008년 05월 20일
[방황하는 칼날]
여튼...오늘도 라이프 로그는 먹통인지라;;
스포일러는 언제나 그렇듯 있다. 음...이 책은 읽어봐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자극'을 위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한 번쯤은 지금의 사법 체계가 옳은가, 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 바움
여기에 미성년 범죄자 3명이 있다. 1명은 차를 제공했다. 사실 차를 제공한 것 이외는 별 것이 없지만 남은 두 명의 범죄를 '방조'한 것이나 다름 없다. 다른 두 명은 각성제를 입수하고, 클로로포름을 이용해 16살 여자아이를 납치해 각성제를 먹여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 그들이 소녀를 범하는 것을 비디오로도 찍어 남겼다. 그러다 소녀가 각성제 때문에 죽자 시체를 강에 유기한다.
아버지는 딸의 시체가 발견되자 오열한다. 어떤 자가 하나뿐인 소중한 딸을 죽인 것인지, 용서할 수가 없다. 그러나 현 일본의 사법체계 하에서는 미성년 범죄자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기 때문에' 보통 소년원에 들어갔다가 갱생과정을 밟고 나온다. 중범죄라 해도 사형이나 중형을 받지 않는다. 아버지는 깊은 절망과 실의에 빠진다. 그런 아버지에게 한 통의 메시지가 날아온다. 범인 중 하나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익명의 메시지. 아버지는 그 주소에 가 딸의 성폭행 영상이 담긴 비디오를 보고 분노에 떤다. 그러던 중에 범인 중 하나가 집에 돌아오고, 아버지는 그 놈을 무참하게 살해해버린다. 그리고 그 놈에게서 얻은 다른 녀석의 단서를 가지고 남은 놈을 '처단'하기 위해 떠난다. 경찰은 아버지를 잡는 동시에 다른 범인을 잡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요는 이렇다. 청소년 범죄자는 성인 범죄자와 달리 가벼운 처벌로 모든 것이 끝나고, 그 전력도 거의 남지 않아 새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고통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며 가해자의 처벌도 미미한 것에 분노한다. 게다가 오히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더 피폐한 삶을 살고, 가해자였던 미성년 범죄자는 별다른 문제 없이 계속 살아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사법체계는 이대로 좋은 것일까?
우리나라도 미성년자들의 경우에도 사실 일본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형법 제 9조에는 '14세 미만의 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고, 소년법에서는 19세 미만의 자는 성인과는 다른 기준으로 처벌을 하도록 해두었다. 소년법이 제정된 이유에는 교정처분과 형사처분에 대한 특별조치를 위한 것이라고 써 있더랬다. 죄를 저지르고도 사실 검찰에서 판단만 잘 해주면 선도교육이나 교육으로 빠질 수도 있고, 각종 형량도 일반 범죄에 비해 적게 해 두었다.(사형, 무기징역은 15년의 유기징역으로, 2년 이상의 형일 때는 장기는 10년, 단기는 5년을 못 넘게 해놨다.) 사실 내가 법률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법 공부라고는 헌법 공부한 거 밖에 없지만, 통상 청소년 범죄자들은 적은 형량으로 선고받거나, 때로는 유예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에 밀양에서 있었던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이 대부분 처벌도 제대로 받지 않고 풀려난 것 아니었나?
솔직히 말해서 초등학교 고학년 쯤 올라가면 뭐가 잘 하는 짓이고 아닌지를 안다고 본다. 상대가 싫어하는 일, 상대가 아파하는 일, 상대에게 손해를 입히는 일은 좋지 못한 일이라고 어릴 때부터 누누히 배워왔고, 집이고 학교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그래, 초등학교는 그렇다 치자...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얼마 전 대구에서 있었던 초등생 성폭행 사건을 생각해보면 그것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백보 양보해서 초등학생을 넘어가서 중, 고등학교에 가서 죄를 지었다 치자. 중고등학생이 성폭행의 개념을 모르겠나? 절도, 폭행의 개념을 모르겠나? 그것들은 분명히 '하면 안되는 일'에 속하며, 그런 일을 저지를 경우에는 자신에게 응당의 댓가가 돌아오게 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말이지, 참 웃기는 것은 평소에 이 어린 것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걸 사실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급우를 이지메하고 때리면서 그걸 '나쁜 짓'이라고 인식이나 하며, 인식한다 한들 '저 새끼가 병신같잖아'라면서 더 하지 않나? 왜 수많은 남학생들이 혼자 있는 어린 여학생 집에 가서 그 애를 강간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죄의식을 못 느꼈을까?
나는 미성년자라고 봐주는 게 옳지 않다고 본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검색해보면 '가서 싹싹 비셈, 청소년은 형 경감도 해주고 그런다능'의 글이 수두룩하다. 이게 옳은지 그른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안되는 정신나간 어린 것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벌만 피하면 된다, 어차피 소년범은 형도 약하니까 뉘우치는 척 하면 봐 준다, 이딴 인식이 있으니까 청소년 범죄가 점점 더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 되는 거다. 가해자들은 지들이 잘못했다고 생각 안한다. '아, 재수 없어서 걸렸어.' 이딴 식이다. 가해자 가족들도 뻔뻔하다. 피해자들은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게토로 쫓겨나거나, 인생의 나락을 떨어진다. 청소년 범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닐까? 소년법이라는 것은. 나는 단 한 번도 신문기사에서 피해자들이 만족할 만큼의 처벌을 받은 가해자를 본 적이 없다. 누굴 죽이고도, 누굴 강간하고도, 누굴 폭행하고도, 별다른 처벌도 안 받고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용서받는다. 오히려 의기양양해 한다. 누굴 위한 건가요? 라고 되묻고 싶다.
이 책에서 말하더라. 왜 우리가 가해자를 위해서 교정을 위한 비용을 다 지불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피해자들을 더 괴롭게 만드는가. 사회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법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실제로 법이 서야 할 곳은 피해자를 위한 곳일텐데, 가해자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 뭐 내가 현장에 있지 않고, 법률가도 아니고, 판사도 검사도 아니지만 보고 들리는 것에 의존해서 판단한다면 법은 가해자 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책에서는 사적인 복수를 실행하도록 두지는 않는다. 첫번째 살인은 어쩌면 '우발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어떤 아버지가 자신의 딸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영상을 보고, 그 범인이 눈 앞에 나타났는데 그만 두겠나? 하지만 두번째는 계획적인 살인을 준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차마 작가도 그것을 '권유라도 하듯' 소설을 쓰진 않았다. 법은 사적 복수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적 복수를 하지 않더라도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위로가 될 정도'의 처벌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와 관련한 책으로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가 있다. 이건 에세이인데, '아들이 살해당한 후, 남은 가족의 끝나지 않은 고통을 추적한' 것이라고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그 후 어떻게 살고 있는가, 를 실제로 추적한 책. 오늘 밤에 읽을 예정.
이글루스 가든 - 천 권의 책읽기
스포일러는 언제나 그렇듯 있다. 음...이 책은 읽어봐도 꽤 괜찮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자극'을 위한 이야기라기보다는 한 번쯤은 지금의 사법 체계가 옳은가, 에 대한 생각을 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 바움여기에 미성년 범죄자 3명이 있다. 1명은 차를 제공했다. 사실 차를 제공한 것 이외는 별 것이 없지만 남은 두 명의 범죄를 '방조'한 것이나 다름 없다. 다른 두 명은 각성제를 입수하고, 클로로포름을 이용해 16살 여자아이를 납치해 각성제를 먹여 성적 노리개로 삼았다. 그들이 소녀를 범하는 것을 비디오로도 찍어 남겼다. 그러다 소녀가 각성제 때문에 죽자 시체를 강에 유기한다.
아버지는 딸의 시체가 발견되자 오열한다. 어떤 자가 하나뿐인 소중한 딸을 죽인 것인지, 용서할 수가 없다. 그러나 현 일본의 사법체계 하에서는 미성년 범죄자는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기 때문에' 보통 소년원에 들어갔다가 갱생과정을 밟고 나온다. 중범죄라 해도 사형이나 중형을 받지 않는다. 아버지는 깊은 절망과 실의에 빠진다. 그런 아버지에게 한 통의 메시지가 날아온다. 범인 중 하나가 있는 곳을 알려주는 익명의 메시지. 아버지는 그 주소에 가 딸의 성폭행 영상이 담긴 비디오를 보고 분노에 떤다. 그러던 중에 범인 중 하나가 집에 돌아오고, 아버지는 그 놈을 무참하게 살해해버린다. 그리고 그 놈에게서 얻은 다른 녀석의 단서를 가지고 남은 놈을 '처단'하기 위해 떠난다. 경찰은 아버지를 잡는 동시에 다른 범인을 잡기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더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요는 이렇다. 청소년 범죄자는 성인 범죄자와 달리 가벼운 처벌로 모든 것이 끝나고, 그 전력도 거의 남지 않아 새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고통에서 벗어나지도 못하며 가해자의 처벌도 미미한 것에 분노한다. 게다가 오히려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더 피폐한 삶을 살고, 가해자였던 미성년 범죄자는 별다른 문제 없이 계속 살아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사법체계는 이대로 좋은 것일까?
우리나라도 미성년자들의 경우에도 사실 일본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본다. 형법 제 9조에는 '14세 미만의 자는 처벌하지 아니한다'고 되어 있고, 소년법에서는 19세 미만의 자는 성인과는 다른 기준으로 처벌을 하도록 해두었다. 소년법이 제정된 이유에는 교정처분과 형사처분에 대한 특별조치를 위한 것이라고 써 있더랬다. 죄를 저지르고도 사실 검찰에서 판단만 잘 해주면 선도교육이나 교육으로 빠질 수도 있고, 각종 형량도 일반 범죄에 비해 적게 해 두었다.(사형, 무기징역은 15년의 유기징역으로, 2년 이상의 형일 때는 장기는 10년, 단기는 5년을 못 넘게 해놨다.) 사실 내가 법률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법 공부라고는 헌법 공부한 거 밖에 없지만, 통상 청소년 범죄자들은 적은 형량으로 선고받거나, 때로는 유예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예전에 밀양에서 있었던 집단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이 대부분 처벌도 제대로 받지 않고 풀려난 것 아니었나?
솔직히 말해서 초등학교 고학년 쯤 올라가면 뭐가 잘 하는 짓이고 아닌지를 안다고 본다. 상대가 싫어하는 일, 상대가 아파하는 일, 상대에게 손해를 입히는 일은 좋지 못한 일이라고 어릴 때부터 누누히 배워왔고, 집이고 학교고 가르치고 있지 않은가? 그래, 초등학교는 그렇다 치자...하고 넘어가려고 해도 얼마 전 대구에서 있었던 초등생 성폭행 사건을 생각해보면 그것도 불가능하다. 그리고 백보 양보해서 초등학생을 넘어가서 중, 고등학교에 가서 죄를 지었다 치자. 중고등학생이 성폭행의 개념을 모르겠나? 절도, 폭행의 개념을 모르겠나? 그것들은 분명히 '하면 안되는 일'에 속하며, 그런 일을 저지를 경우에는 자신에게 응당의 댓가가 돌아오게 된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 말이지, 참 웃기는 것은 평소에 이 어린 것들이 범죄를 저지르는 걸 사실 별것 아닌 것처럼 여긴다는 점이다. 급우를 이지메하고 때리면서 그걸 '나쁜 짓'이라고 인식이나 하며, 인식한다 한들 '저 새끼가 병신같잖아'라면서 더 하지 않나? 왜 수많은 남학생들이 혼자 있는 어린 여학생 집에 가서 그 애를 강간하기 위해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죄의식을 못 느꼈을까?
나는 미성년자라고 봐주는 게 옳지 않다고 본다. 네이버 지식인에서 검색해보면 '가서 싹싹 비셈, 청소년은 형 경감도 해주고 그런다능'의 글이 수두룩하다. 이게 옳은지 그른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도 안되는 정신나간 어린 것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벌만 피하면 된다, 어차피 소년범은 형도 약하니까 뉘우치는 척 하면 봐 준다, 이딴 인식이 있으니까 청소년 범죄가 점점 더 눈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 되는 거다. 가해자들은 지들이 잘못했다고 생각 안한다. '아, 재수 없어서 걸렸어.' 이딴 식이다. 가해자 가족들도 뻔뻔하다. 피해자들은 오히려 눈에 보이지 않는 게토로 쫓겨나거나, 인생의 나락을 떨어진다. 청소년 범죄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이 아닐까? 소년법이라는 것은. 나는 단 한 번도 신문기사에서 피해자들이 만족할 만큼의 처벌을 받은 가해자를 본 적이 없다. 누굴 죽이고도, 누굴 강간하고도, 누굴 폭행하고도, 별다른 처벌도 안 받고 단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용서받는다. 오히려 의기양양해 한다. 누굴 위한 건가요? 라고 되묻고 싶다.
이 책에서 말하더라. 왜 우리가 가해자를 위해서 교정을 위한 비용을 다 지불해야 하는가. 왜 우리는 피해자들을 더 괴롭게 만드는가. 사회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 법이 존재하는 것이라면, 실제로 법이 서야 할 곳은 피해자를 위한 곳일텐데, 가해자에게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다. 그래, 뭐 내가 현장에 있지 않고, 법률가도 아니고, 판사도 검사도 아니지만 보고 들리는 것에 의존해서 판단한다면 법은 가해자 편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책에서는 사적인 복수를 실행하도록 두지는 않는다. 첫번째 살인은 어쩌면 '우발적'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어떤 아버지가 자신의 딸이 무참하게 짓밟히는 영상을 보고, 그 범인이 눈 앞에 나타났는데 그만 두겠나? 하지만 두번째는 계획적인 살인을 준비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차마 작가도 그것을 '권유라도 하듯' 소설을 쓰진 않았다. 법은 사적 복수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사적 복수를 하지 않더라도 피해자들에게 '충분히 위로가 될 정도'의 처벌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와 관련한 책으로 [내 아들이 죽었습니다]가 있다. 이건 에세이인데, '아들이 살해당한 후, 남은 가족의 끝나지 않은 고통을 추적한' 것이라고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그 후 어떻게 살고 있는가, 를 실제로 추적한 책. 오늘 밤에 읽을 예정.
이글루스 가든 - 천 권의 책읽기
# by | 2008/05/20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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